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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발성난청도 소음성난청이란 말이야. 사격훈련 예비군 중대장 돌발성난청도 공무상재해 인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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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16-05-27 1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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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무법인(유) 한결  공인노무사 정 경 심

 

 

돌발성난청도 소음성난청이란 말이야       

사격훈련 예비군 중대장 돌발성난청도 공무상재해 인정

 

 

인내가 필요한 난청자들과의 상담 

 

    산재나 공상 상담에 어려움을 겪는 대상들 중의 하나가 난청자들이다. 보통 사람들과 똑같다고 생각하고 상담을 했다가는 자신의 인내심이나 인격을 의심하게 된다. 내 말을 잘 못 알아들으니 답답하기 짝이 없다. 난청자의 입장에서는 소리를 잘 못 들으니 TV, 라디오 불륨을 마구 올려대고 그에 맞추어 자신의 목소리도 점점 커지게 된다고 하지 않는가. 상담을 하는 내 목소리도 덩달아 커진다. 상담이 아니라 서로 핏대를 올리는 싸움판 같다. 재미있는 것은 난청이 되면 성격도 급해진다는 점이다. 외부하고 소통이 잘 안되니 다른 사람보다 쉽게 답답함을 느끼고 화도 잘 내게 된다.

 

    이번 사례의 주인공도 처음에는 부인을 통역(?) 삼아 대동하고 왔다. 부인의 역할은 성급함에 쫒기는 남편의 의사를 정리해서 전달하고 남편을 진정시키는 것이었다. 이 부인은 지역의 총각들과 외국인 신부들의 결혼을 중개하는 사업을 하는 분으로, 물심양면으로 남편을 돕는 후원자이기도 했다. 남편과 함께 지역의 유지였던 부인은 다른 데 가서는 떵떵거릴  만도 했지만, 마구 신경질을 내는 남편 앞에서는 아이를 도닥거리는 유치원 선생님처럼 굴었다.

 

    나도 처음에는 성미 급한 원고와 말을 맞추느라 덩달아 답답증이 났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노하우를 터득하게 됐다. 난청자들에게는 소리를 크게 내야 하는 게 아니라 천천히, 그리고 정확하게 얘기해야 한다는 것. 천천히 말한다는 것은 소리를 또렷하게 만들어 잘 알아들을 수 있게 한다는 점도 있지만, 난청자의 마음을 안정시키는 효과도 가져올 수 있다. 사건이 진행되면서부터는 전화로 모든 정보를 주고받고 사건진행에 대한 협의를 하곤 했지만, 그가 난청이라는 사실 때문에 의사소통에 문제가 생기지는 않았다. 다만, 원고에게 전화를 하기 전 잠시 마음과 호흡을 가다듬고 “안녕~하세요오~”로 천천히 시작하면 되었다. 교사인 친구가 자기네 반 망나니 제자로부터 늘 “선생님, 릴래액스(relax), 릴래액스” 하는 주문을 듣는다더니...

 

한번에 천발의 총성을 듣는다면?

 

    원고는 1989년 농촌의 군 예비군 중대장으로 임용되어 근무하던 중 2006년 “양측 소음성 난청, 감각신경성 난청” 진단을 받고 공무원연금공단에 공무상요양신청을 하였다. 그러나, 공단에서는 1997년의 의무기록에 아침에 출근 후 안들리기 시작한 것으로 기재되어 있고, 2006년도의 건강검진에서도 청력이 정상으로 판정되었다면서 원고의 요양신청을 불승인하였다.

 

    원고가 자신의 난청이 공상이라고 주장하는 이유는 예비군들의 사격훈련시 교관으로 근무하면서 장기간 총성에 노출됐다는 것이었다. 사격훈련은 사격장에서 예비군 6~10명이 한 팀이 되어 동시에 6발씩(36~60발)씩 쏘는데, 총 2, 3시간 동안 15~20팀이 사격을 하면 540~1,200발 정도의 총성이 울린다. 이런 훈련은 연간 20회 정도 실시되었다. 원고는 사격훈련장을 도식화해서 사선통제, PRI 훈련, 안전통제, 병기손질 업무 담당자의 위치, 사격장 3면을 둘러싸고 있는 산 등의 지형지물을 설명해 주었다. 구두로 하는 의사소통에 문제가 있다고 생각해서인지 원고는 틈만 나면 자신의 주장과 근거를 몇장씩 타자해서 메일을 보내주곤 했다.

 

    처음에는 사선통제가 무엇인지, PRI 훈련이 무엇인지 화성나라 언어 같았지만, 원고의 꼼꼼한 설명 덕에 사격훈련장 이미지가 머리 속에 그려지기 시작했다. 그러니까 3면이 산으로 둘러싸여서 소리가 밖으로 안나간단 말이죠? 제법 공부 잘하는 학생이 되어 갔다. 2, 3시간 동안 500발, 1,000발의 총성을 바로 옆에서 들으면 어떻게 될까? 내 귀와 뇌, 몸의 감각은 어떻게 달라질까? 원고는 1997년 여름부터 총소리가 예민하게 들리고, 가끔 좌측 귀가 멍하면서 소리가 안 들리기 시작했고, 2006년 들어서는 우측 귀가 안들리기 시작했다는 것인데, 나는 1997년 총소리가 예민하게 들리기 시작했다는 말에 감각이 쭈뼛해졌다. 예민하게 들렸다는 게 뭐죠? 아, 소리가 전하고 다르게 들렸다는 거죠. 어떻게요? 아, 그걸 어떻게 설명하지? 참, 설명할 빵뻡이 없네.... 나름대로 영화 속의 주인공이 카오스 상태가 되어 환청을 듣는 상태를 연상해 볼 수 밖에 없었다.

 

    목욕하다 귀에 물이 들어가서 잘 안들리는 잠시 동안, 비행기가 상승하면서 귀가 멍멍해지는 동안, 시끄러운 술집에서 도무지 상대방의 이야기를 알아들을 수 없는 그 동안, 우리는 얼마나 답답한가? 내 능력과 감각의 변화에 당황하고, 소통의 부재를 느끼고, 심지어 무기력해지기까지... 원고가 가장 답답해하는 것은 난청 때문에 자신이 사오정이 되는 것, 다른 사람들이 지레 사오정으로 생각하는 것, 무엇인가 남들하고 다르다는 것이었다. 난청은 별달리 치료방법이 없고, 치료 때문에 휴직해야 하는 것도 아니며, 단지 장해보상을 받을 수 있을 뿐이고, 공무원은 장해보상도 퇴직 후에나 받을 수 있기 때문에 원고는 이 소송을 해서 받을 수 있는 경제적 이득이 그리 많지 않았다. 그래도 비용을 들여가면서 소송을 하겠느냐고 물었을 때 원고는 그러마고 했다. MB가 자신의 고향 출신이란 걸 자랑스러워하는 보수적이면서 정직한 군인(예비군이지만 누구보다 군인정신이 투철한)이었기에 더욱 그는 자신의 장애가 공무를 하다가 얻은 것이었음을 확인받고자 하는 열망이 높았다.

     

돌발성난청과 소음성난청이 혼재됐을 가능성 인정

 

    공단에서 제기하는 주장이 말도 안되는 것이었지만, 재판에서는 그 오해를 풀어주어야 했다. 우선, 1997년 청력 이상을 느끼고 간 병원의 의무기록지에 아침에 출근을 한 뒤 안 들리기 시작했다고 기재되어 있는 점. 공단의 주장은 총성 때문에 난청이 생겼다면 사격장에서 안 들렸어야 하는 것 아니냐는 이면의 단순함을 담고 있었다. 이 사건에서는 원고가 다니던 여러 병원은 물론이고, 법원에서 지정하는 병원에 이르기까지 여러 곳에 감정신청을 하였는데, 감정기관에서는 한결같이 소음성난청은 지속적인 소음 상황에서 수년에 걸쳐 서서히 나타나는 것이 일반적이라고 답해 주었다. 총성을 듣는 현장에서 바로 난청이 생기는 것은 아니므로 난청에 대한 자각이 어디에서였건 아무런 문제가 안되는 것이었다.

 

    2006년 건강검진에서 청력이 정상이었다는 주장은 어떻게 설명해야 한단 말인가? 어떻게 된 영문인지를 물었더니 건강보험공단에서 하는 건강검진이라는 게 다 나이롱이라는 설명이었다. 지역의 보건진료소에서 건강검진을 하는데, 청력검사 때 대충 오른손 들었다 왼손 들었다 해서 통과되고, 검사자도 그저 다음 사람을 부르기에 여념이 없다고 했다. 그러니 1997년에 이미 좌측에 고도의 청력장애를 보였고, 건강검진 바로 뒤 병원에서 우측까지 난청 소견을 받을 수 밖에... 군의 예비군 중대장도 유지급에 속하는지라 원고는 보건진료소장에게 이런 날림 건강검진 실태를 기록한 확인서를 받아 왔다. 집안을 샅샅이 뒤져 2005년 생명보험에 가입하기 위해 받았던 건강검진 기록을 찾아 오기도 했다. 2005년의 청력검사에서 원고는 좌측 난청은 물론, 우측에도 이미 난청이 와 있었다. 난청의 자각은 시간이 경과한 후에 자각한다는 감정소견대로, 원고는 우측 난청이 이미 있었지만, 2006년에야 자각을 하게 된 것이다.

 

    사실은, 처음 공단에서 요양을 불승인했을 때의 사유 외에 재판에서 추가로 주장한 사유가 더 난제였다. 2006년 발견된 우측 난청의 경우 낮은 주파수의 청력은 문제가 없지만, 4천, 8천Hz와 같은 고주파수 청력이 손실을 보였다. 청력검사 그래프를 그려보면 하강형이 나오는, 전형적인 소음성 난청이다. 그러나, 1997년 진단받았던 좌측 귀는 전 주파수대에서 75dB에서 90dB로 고른 청력손실을 보였다. 전형적인 소음성난청이 아니었던 것이다. 게다가 원고의 좌측 난청은 애초 ‘돌발성 난청’으로 진단받았기 때문에 그 원인이 소음이 아니라는 오해를 받기에 딱 좋은 것이었다. 돌발성난청은 돌발적으로 발생했다는 의미 외에 그 원인을 알 수 없는 감각신경성난청을 그렇게 부른다. 그러니, 공단에서 트집을 잡기에 매우 좋은 상황이 되었다.

 

    다행히, 원고는 각종 검사에서 소음 외에 다른 난청의 원인이 발견되지 않았고, 총성으로 인한 소음 피해가 입증되었으며, 우측의 난청이 전형적인 소음성 난청이었기 때문에 감정의들은 소음성 난청과 돌발성 난청이 혼재되었을 가능성을 시사해 주었다. 법원은 결국 “① 원고는 1989. 9. 1.부터 예비군 중대장으로서 근무하면서 사격훈련에 관여하면서 상당한 정도의 소음에 장기간 노출되었고 이러한 소음은 이 사건 상병의 발병 원인이 되는 점, ② 소음 외에 이 사건 상병의 발병 원인이 될 만한 다른 원인이 발견되지 않은 점, ③ 카톨릭대학교 성모병원장의 감정소견, 단국대학교병원장과 서울대학교병원장의 의학적 소견도 이 사건 상병이 발병 원인을 소음으로 보고 있는 점 등에 비추어 보면, 원고가 공무(사격훈련 통제 및 지도업무)를 수행하는 과정에서 장기간 상당한 정도의 소음에 노출되어 이 사건 상병이 발병한 것으로 보아야 한다.”는 결론을 내려 주었다. 좌측의 돌발성난청 문제 때문에 1심을 진행하는 데에만 2년여를 끌어왔다.

 

잘 안보이고, 안들리는 고통을 느껴보세요

 

    원고는 귀가 따갑게 고맙다는 말을 연발했다. 여러 차례 반복하기도 했지만, 워낙 큰 소리로 얘기해서 수화기에 닿은 내 귀가 따가웠던 게 사실이다. 원고의 부인도 감사의 말을 전해 주었다. 그리고 나와 같이 꼼꼼하고 괴팍한 그의 남편 흉을 봤다.

 

    요즘, 또래 친구들을 만나면 돋보기, 다초점 렌즈, 심지어 백내장 수술까지 화제에 오른다. 다들 전화번호 목록이 잘 보이지 않아 셀카를 찍는 것도 아닌데 팔을 멀찍이 뻗어서 핸드폰 화면을 읽는다. 그러면서 하는 말. 야, 이제 조금 있으면 들리지도 않는단대!! 그리곤 깔깔 웃는다. 아무렇지도 않은 듯 깔깔 웃지만, 사실은 두렵다. 약병과 화장품의 설명글이 산란하게 보일 때, 법전의 글씨가 피곤하게 느껴질 때, 수첩의 지하철노선이 겹쳐 보일 때 스멀스멀 스며들던 불안감... 이제 청력이 떨어지면 어떤 불안과 답답함이 생겨날까... 우리의 예비군 중대장님은 그 세월을 어떻게 넘겼을까...

 

    요즘 이 사건의 판결문을 구해 보고 자신의 난청 요양불승인처분 취소 소송을 의뢰한  싸이카 교통경찰관의 사건이 한참 진행중이다. 우리는 지금 재판부에 현장검증을 신청해서 판사가 직접 싸이카를 한번 타보고 서울시내를 질주하면서 싸이카의 경적과 엔진 소음을 한번 체험해 보자고 할 작정이다. 무척 유쾌하고 낙천적이기까지 한 이 경찰관과 내가 낄낄거리면서 이 이야기를 하자, 사건을 담당한 변호사도 한술 보탠다. 동생의 오토바이 뒤에 타본 적이 있다면서 좋은 생각이라고. 난청자들의 바람은 그것이다. 소음으로 인한 고통을 한번이라도 경험해 보면 자신들이 왜 돈과 시간을 들여가면서 산재를, 공무상재해를 인정받으려고 애쓰는지 공감할 것이라는...